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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안심귀갓길에 가려진 은둔형 외톨이의 분노 범죄
    Urban/Original 2023. 8. 23. 15:14
    임계점 벗어난 사회불평등이 범죄로 표출되어 나타난 '분노 범죄'
    여성안심귀갓길 예산 삭감과 신림 여교사의 죽음 상관성은 부족
    10여년 전 일본 사회문제된 '도리마'(通り魔) 사건'과 유사

     

    서울의 한 여성안심귀갓길

     

    NOW THIS

     

    지난 8월 17일 오전 신림동 관악산 생태공원 등산로에서 30세 남성이 너클을 이용해 30대 여성 폭행하고 성폭행까지 가한 일이 벌어졌다. 피해 여성은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틀 뒤 끝내 숨졌다. 가해자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성폭행하고 싶어 범행했다”고 동기를 밝혔다. 피해 여성은 초등학교 교사로 예정된 연수를 위해 출근하던 길에 참변을 당했으며 가해자와 피해자는 일면식 없는 관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신림동 성폭행 살인사건은 갑자기 ‘여성안심귀갓길’ 논란으로 번졌다. 시민들이 서울 관악구에서 ‘여성안심귀갓길’ 예산을 삭감한 구의원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논란은 더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강력 사건 가해자들이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음에도 시의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난 만큼 ‘고립 청년’ 문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WHAT IT MATTERS

     

    서울 관악구에서 ‘여성안심귀갓길’ 예산을 삭감한 이는 바로 최인호 구의원이다. 시민들은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한 구의원 사퇴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신림동에서 일어난 여교사의 죽음이 여성안심귀갓길 폐지와 관련이 있고 치안 불안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일어난 것이라는 질책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성 대상 범죄와 여성안심귀갓길 폐지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최인호 관악구의원이 밝히는 삭감 사유는 여성안심귀갓길에 남성들을 위한 보호가 빠져 있다며 여성안심귀갓길에서 ‘여성’을 뺀 ‘안심골목길’사업으로 대체해야한다고 주장했다. 2023년 관악구청 예산서를 살펴보면 기존 여성가족과에서 실시한 여성안심골목길 설치 사업 7400만원 예산은 삭감됐고 대신 도시재생과 소관의 ‘안심골목길 조성 디자인사업’으로 이관됐다.

     

    최근 신림동 성폭행 살인사건 등 흉악범죄가 잇따르자 여성안심귀갓길 전면 폐지 등을 추진해 온 최 의원에 대해 비난이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다. 여성 대상 범죄와 여성안심귀갓길 폐지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경찰 조사에 따르면 가해자는 사전에 CCTV 사각지대를 파악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등산로 입구를 범행 장소로 염두하고 사전 답사도 진행했다. 하지만 등산로는 여성안심귀갓길 설치 대상이 아니다. 여성안심귀갓길 예산이 삭감되어 도시 치안이 불안해질 수는 있어도 신림동 성폭행 살인사건과의 직접 관련성 여부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여성안심귀갓길은 무엇이고 어디에 설치됐나?

     

    여성안심귀갓길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여성정책 중 하나였다. 2016년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과 같이 도시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자주 발생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꺼낸 정책이다. 여성안심귀갓길은 유사 범죄 발생현황, 방범 시설물 등을 분석해 자치구와 경찰서가 협의하여 구역을 지정한다. 구역으로 지정되면 지자체는 CCTV∙비상벨∙표지판 등 방범시설을 설치하고, 경찰은 여성안심귀갓길을 집중적으로 순찰 활동을 한다.

     

    여성안심귀갓길이 지역에서 어떤 곳에 설치되었는지 확인을 하는 것은 자치구별로 상이하다. 마포구는 여성안심귀갓길을 지도로 표기해서 정보를 제공했는가 하면, 서초구는 ‘서초안전지도’에 표기해 위치현황을 알렸다. 자치구 홈페이지에선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이럴 경우 지역별 관할 경찰서 홈페이지 정보마당란에서 여성안심귀갓길 구역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안심귀갓길의 성과와 한계

     

    여성안심귀갓길이 만들어지게 되면 CPTED(범죄예방환경설계)를 통해 골목 자체를 범죄가 벌어지지 않을 환경으로 재조성한다. 이 같은 설계는 곧 범죄자로 하여금 범죄두려움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지구대 경찰이 여성안심귀갓길에 대한 순찰을 강화해 범죄가 벌어지는 상황이 나타나면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반면 여성안심귀갓길이 전시행정이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여성안심귀갓길로 지정되어도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절반 이상이며 보안등이 설치되어도 너무 밝다는 민원으로 인해 조도를 조정한 경우가 있다. 결국 지구대의 집중 순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인력의 한계가 있고 여성안심귀갓길을 늘려갈 수록 집중 순찰의 효과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성안심귀갓길 폐지와 신림동 여교사 죽음의 상관성

     

    신림동 성폭행 살인사건과 관악구 여성안심귀갓길 예산 삭감이 대비되며 미디어에서는 관련 소식을 쏟아내고 있다. 얼핏 두 사건은 연관성 있어 보일 수 있지만 신림동 성폭행 살인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은둔형외톨이 문제와 사회불평등의 영향이 더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나 이번 사건 현장이 등산로였다는 점, 사건 발생 시간이 오전이었다는 점, 가해자가 CCTV가 없는 곳에서 사건을 벌였다는 점 등을 미루어보았을 때 여성안심귀갓길 사업이 폐지된 것과는 큰 연관성을 띠기 어렵다. 등산로는 일반적인 귀갓길이 될 수가 없고 동네 골목과 비교해 CCTV가 설치된 곳을 보기가 어렵다. 결국 등산로는 여성안심귀갓길 사업이 진행되긴 어렵기 때문에 두 사건의 상관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CCTV 설치로 범죄 사각지대 막자
    은둔형 외톨이 증가와 연관성 높아 관리 필요

     

    일본 가와사키시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 사건 현장(출처: japantimes.co.jp)

     

    이번 사건을 두고 등산로나 산책로에도 CCTV 설치를 의무화 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범죄사각지대를 줄여 이번 사건에 대한 방안을 강구해야한다는 취지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CCTV 설치가 범죄 예방 효과를 갖지 못 한다는 분석도 있다. 

     

    2021년 한국셉테드학회(CPTED·범죄예방디자인)의 'GIS 공간분석을 통한 CCTV의 범죄 예방 효과에 대한 연구'를 보면, 서울 25개 자치구를 분석한 결과 CCTV가 다량으로 설치된 자치구와 인접구에 오히려 강간·강제추행·절도 등 5대 범죄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CTV 설치를 해도 감시를 통한 범죄 예방 의존성이 강화되어야 하지만 설치 대수만 늘어나고 이를 감시할 인력 등은 충원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 범죄 예방 효과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범죄심리를 연구하는 전문가와 복지 전문가는 다른 대안을 내놨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묻지마 범죄나 칼부림 범죄 등이 10여년 전 일본에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의 흉기난동 문제와 유사성을 갖고 있으며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히키코모리 일으키는 이상 행동의 배경은 사회적 불평등이 임계점을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교정복지학회가 발간한 ‘한국형 분노범죄의 원인과 대응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분노범죄는 선진국형 범죄 유형이며, 사회가 고도화되고 빈부격차가 커진 반면 개개인의 사회 적응 능력이 약화되면서 발생하는 자괴감 등이 분노를 느끼괴되고 범죄 방식으로 표출된다는 설명을 한다.

     

    이는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뒤 일본 사회와의 모습과 큰 유사성을 갖기도 한다.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에서는 지난 20여년간 무차별 살상 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이는 거리의 악마를 뜻하는 '도리마'(通り魔) 사건'으로 불리며 사회 문제로 비화했다. 도리마 사건의 주요 동기로는 처지 비관, 사회적 고립, 경제적 빈곤 등으로 꼽힌다.

     

    정민구 에디터

    journalseoul@gmail.com